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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람들이 따르는 생각을 옛글에서 읽으면 놀라곤 한다. 이래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번역한 글을 다듬다가 음악과 인간다움, 음악과 교육 사이를 생각하게 하는 글월을 읽고, 추려본다. < 논어 > 시에서 일어나고 예에서 서며 음악에서 이룬다.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각주:1] 여기서 일어나고 서고 이뤄지는 것은 바로 인(仁)이다. 시에서 인간은 모든 감정에 눈 뜨고, 예에서 서로 존중하는 것을 배우며, 돕고 갈등하는 과정을 겪어 나간다. 그런 다음 음악에서 인의 완성(成)을 본다는 것이다. 이것을 교육으로 가져와 보자면,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드러낼 수 있는 아이로 기르기를 먼저 하고, 그 다음 관계를 맺고, 서로 돕는 게 필요한 것, 그 방법을 알며, 그 끝으로 사람다워지는 노력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한다는 것이라 하겠다.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초기 교육의 역할은, 논증하고 이해할 수 있기 전에 음악(mousikè)과 같은 미학적 방법으로 어린이가 선을 사랑하고, 악은 미워하게끔 길러내는 것이다.[각주:2] 그리고 이성(理性)[각주:3]이 올 때, 아이는 음악이 기른 사랑으로 이성을 부모처럼 껴안으며 알아본다.[각주:4] 그들도 아름다움 음악을 들려주며 바름과 그름을 구분하는 힘, 경향, 또는 의지를 키운 뒤 지식과 논리를 습득하게 했다. 재밌는 점은 이와 같은 내용은 소위 '형이상학'과 통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즉, 특수한 영역의 어떤 지식을 배우기 전에 '일체의 존재자의 궁극적 근거'를 말과 글보다 앞서 느끼게 하고, 또는 있다고 믿게 한 뒤 그것을 평생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서 말이다.

물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자이기에 그렇다고, 또는 그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서구 교육을 근대 이후 우리가 상당 부분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먼저 본 '논어'도 그리 말하고 있다. 현대 생물학, 발달심리학은 어린이에 관해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가르치는 원리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는 사람에게 보이는 일관된 '그 무엇', 궁극적 근거 또는 그 방향이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옛것은 틀린 게 있어도 함부로 버릴 것은 아니다. 사람을 통찰하는 시각은 분명 하나로 통한다. 현대 와서 우리 삶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이지만, 그 줄기는, 또는 그 본질은 거의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게 이전 세대가 앞으로 살아갈 세대를 교육할 수 있는 까닭, 허락할 수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 <> 물음 <> -----
1. 그 모든 교육 이전의 교육(또는 보육, 양육, 어떤 '교육적' 체험)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2. '바름'을 향한 감수성(의지, 이성과 지성의 토대)가 그 사회 멍탈리테(Mentalite)를 영구화하는 데 합리화하거나, 순응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논어, 태백 제8장 [본문으로]
  2. Olivier Reboul, La philosophie de l'éducation, p32. 이 방법은 감성교육이 이성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루소(J. J. Rousseau)의 발달 단계론과 그의 교육론과 거의 일치한다. 이와 같은 교육을 자연주의 교육이라고 하며, 바제도우, 페스탈로찌, 프뢰벨, 듀이와 같은 이들이 이어 받았다. [본문으로]
  3. 감각적 지각과는 구별되는 지적 이해력과 직관력 보다 엄격하고 좁은 의미로는 학문·진리, 영원한 실재(實在)의 제 1 원리를 파악하는 정신적 능력으로 산만하고 단편적인 사유행위에 작용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에게는 세 가지 수준의 이성(nous)이 존재한다고 보고, 감상적 이성 수동적 이성·고차원적 능동적 이성을 들면서 고차원적인 능동적 이성만이 진정한 의미의 천부적이고 영원한 것이라고 하였다. 플라톤(Platon)은 이성을 참다운 실재(實在)인 이데아를 아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칸트(I. Kant)에 있어서의 이성(Vernunft)은 감성(懇.,Sinnlichkeit)이나 오성(悟性, Verstehen)과 구별되는 특수한 정신적 능력으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완전성의 표상(表象)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모든 경험적인 조건을 초월하는 것을 말한다. (가져온 곳: 교육학용어사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 6. 29., 하우동설) [본문으로]
  4. 가져온 곳: 플라톤, 공화국 3장, 40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0장, 117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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